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재판을 16개월째 심리해 오던 재판장이 최근 법원에 사직을 표명하면서 적절성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 재판장 강규태(52·사법연수원 30기) 부장판사는 다음달로 예정된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냈다. 여기다 지난해 건강상 이유로 두 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은 이후 주변에 형사재판 업무의 피로감을 호소했다고 전해진다. 문제는 강 부장판사가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2022년 9월부터 맡아온 당사자라는 것이다. 이 대표가 지난 대선 때 대장동·백현동 개발사업 의혹에 대해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지금까지 지연된 재판이 강 부장판사의 사직으로 더 지연될 것으로 관측되면서 거센 비판에 휩싸였다.
강 부장판사의 행태에 대해 국내에서는 “판사의 양심을 저버린 무책임의 대표 사례”라는 지적이, 미국 법조계에서조차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뉴욕주 브루클린 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인 대니 전 판사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판사가 특별한 사유도 없이 맡은 재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사표를 내고 나가는 것은 미국 사회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검사 출신인 장우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미국은 불가피한 상황이 생기지 않는 한 최대한 판사 본인이 책임을 지고 재판을 마친다”며 “특히 미국은 한국과 달리 한 법원에서 오래 근무하고, 판사 본인이 평판을 쌓아 상급 법원으로 올라가는 시스템 속에서 끊임없이 평가받는다는 점도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안처럼 16개월 가까이 심리를 진행하다 선고를 마치지 못한 채 사직하는 케이스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사직을 했다고 책임 방기로 몰아가는 건 지나치다는 반박도 있다.
미국 법조에 정통한 한 로펌 대표는 “미국 형사재판은 배심원들이 사실관계 및 유무죄 판단을 하고 판사는 형량 결정과 같은 법률적 판단을 한다”며 “사건에 관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한국 법원 상황을 미국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섣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법률신문 취재에 따르면, 강 부장판사는 최근 주변에 “신속히 재판을 끝내려고 노력했지만, 증인신문 등 증거조사 절차가 길어져 선고를 못했다. 재판 지연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애초부터 4월 총선 전에 판결을 선고하기가 어려웠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로 진행 경로를 보면, 재판은 2022년 9월 8일 이 대표가 기소된 직후부터 늘어졌다. 검찰 측의 방대한 수사기록과 대장동 등 배임 사건에 대한 수사기밀 유지로 피고인 측의 기록 열람복사가 지체됐다는 것이다. 이어 2023년 1월 말 검찰 입증계획이 수립됐다. 재판부는 같은 해 2월 4차 공판준비기일에서 법관 정기인사 이동을 감안해 3월부터 공판을 시작, 피고인 측 요청과 검찰 측 협의에 따라 2주에 한 번씩 열기로 했다. 재판은 그해 9월 이 대표의 정기국회 참석과 단식 장기화로 두 차례에 걸쳐 기일이 변경된 것을 제외하고 격주로 진행됐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10월 공판에 불출석하자 다음 공판부터 피고인 출석 없이 진행했다. 이 무렵부터 재판 지연 논란이 불거졌다. 검찰은 매주 재판을 요청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다른 대형 사건 일정 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12월 22일 17차 공판까지 총 31명의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여전히 15명 이상의 증인에 대한 신문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사표를 던졌다.
이용경 기자
2024-01-15 09:37 <저작권자 ⓒ NGO글로벌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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