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피해
군 복무중 사고 두 다리 절단 ‘박준기’ 현장 조사
박준기 ‘헌병에게 맞아서 생긴 부상’ vs 군 검찰 ‘투신자살 과정에서 생긴 부상’
기사입력: 2015/11/19 [04:36] ⓒ NGO글로벌뉴스
추광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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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이라는 세월의 간극만큼이나 군 검찰단과 군복무 도중 의문의 사유로 두 다리를 절단하게 된 박준기씨 측의 입장은 벌어져 있었다. 17일(화) 오후 춘천 한림대 성심병원에서 실시된 현장조사에서였다.

 

▲박준기씨가 잘린 두 다리를 보여주고 있다. 박 씨는 의족에 의지해 짧은 거리만 보행이 가능한 상태다.      © 추광규 기자   

박준기씨는 지난 1994년 육군 제2군단사령부 정보처 선임하사(중사 당시 24세)로 근무하던 중 원인불명의 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잃었다.

 

박 씨는 사고원인에 대해 헌병대의 구타로 인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반해 군 검찰단은 음주교통 사고 후 자책감을 못 이겨 투신자살을 시도하면서 생긴 부상으로 인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박 씨는 국회 앞 1인 시위 등을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박 씨의 호소가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한 국회국방위원회 소속 진성준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나섰다.

 

진 의원은  지난 4월 정기국회 국방위 발언을 통해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초동수사 부실 등을 이유로 재조사를 촉구했다.

 

한 장관은 "군의 조사를 못 믿으면 다른 민간과 함께 확인한다든지 그런 건 가능하다.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국방부장관의 검토는 재조사 수용으로 이어졌다. 군 검찰단에서 박준기씨 사건을 재조사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처음으로 현장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날은 춘천 한림대 성심병원에서 박준기씨가 투신했다는 장소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통한 첫 현장조사였다.

 

군 검찰단은 투신장소인 이 병원에서의 현장 검증을 통해 시뮬레이션을 실시하면서 상황을 재현하고자 했다. 당초 군 검찰단은 자신들 단독으로 현장조사를 실시하고자 했다. 하지만 박준기씨 측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박석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등의 시민단체들의 참관을 허용했다.  

 

어렵게 시작된 이날 현장조사는 세월의 간극만큼 양측의 엇갈린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 파열음을 냈다. 가장 먼저 벽에 부딪힌 부분은 창문을 통해 투신을 했기에 과연 창문이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느냐의 여부였다.

 

춘천 한림대 성심병원의 창문은 반개방형으로 창문 하단 손잡이를 잡아당기거나 밀어 위에서 아래로 여닫도록 되어 있었다. 창문은 폭이 78cm에 높이가 48cm이었다.

 

최대 개방 폭은 24cm이었다. 체격이 큰 편인 박준기씨가 투신을 위해 몸을 빼고 통과가 가능한 창문 개방 폭은 24cm는 되어야 한다.

 

박 씨 측은 사건 당시 시설물관리를 맡았던 영선반장의 지난 1월 증언내용을 기초로 10층 병실의 개방 폭은 12.5cm라면서 이를 기준으로 시뮬레이션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반해 군 검찰단은 최종 보고서를 기준으로 창문 개방 폭을 24cm로 설정한 후 시뮬레이션을 하겠다고 말했다.

 

 

▲ 17일 이루어진 현장조사에서 군 검찰단에게 박씨측이 창문 개방폭은 12.5cm로 설정한 후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좌측 부터 시계방향으로  군 검찰 담당 조사관  박씨의 형, 박준기씨, 박석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   © 추광규 기자 


 

이 같은 양측의 견해는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박 씨 측은 "군 검찰단이 설정한 창문 개방 폭 24cm는 이미 자신들이 정해놓은 결론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시 형식적으로 조사를 한 후 마무리 짓기 위한 계획"이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박 씨 측은 이 같은 불만을 제기하면서 "군 검찰은 창문 개방 폭으로 24cm를 내세우는 근거를 대라"고 촉구했다.

 

군 검찰단은 "'최종 보고서'의 내용이 그렇다"면서, "창문 개방 폭을 24cm로 설정해  시뮬레이션을 실시하겠다"고 고집했다.

 

박 씨 측도 물러서지 않았다. 박 씨 측은 "창문 개방 폭이 12.5cm이었다는 점은 영선반장등의 증언으로 뒷받침된다"면서, "이를 가지고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고 맞섰다.

 

양측의 입장이 시작부터 파열음을 내면서 결국 이날 현장조사는 실시되지 못했다.

 

다만 군 검찰은 영선반장의 증언을 이날 현장에서 듣자는 박씨측의 요구를 수용 했다. 이에 따라 영선반장 김 씨의 증언 청취가 이루어졌다.

 

해당 병원의 개원 당시부터 시설물 관리를 맡아왔다는 김 모 씨는 이날 증언에서도 지난 1월 자신의 증언내용을 계속해서 유지했다.

 

김 씨는 "80년도 후반 내지는 90년 초순경 시설물 수리를 하다 보니 창문 개방 폭이 24cm로 머리가 빠져 나갈 수 있는 정도여서 위험하다고 판단했다"면서, "사무실쪽 창은 그대로 놔두고 병실쪽 창문을 일괄적으로 12.5cm가 개방될 수 있게끔 볼트 위치 등을 교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투신을 했다는 장소는 당초 병실로 사용하다 1992년경 부터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면서, "성당으로 개조하면서 창문개방 폭을 별도로 조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증언했다.

 

영선반장 김 씨의 이 같은 증언에 군 검찰단은 "누구라도 창문 개방 폭을 늘리기 위해 볼트 등을 풀고 조절할 수 도 있지 않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김 씨는 "병원 개원 후 창문을 더 열기 위해 볼트 등을 조절한 경우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좌측이 가장 넓게 개방될 수 있는 24cm, 우측은 그 절반인 12.5cm 창문 폭이다.     © 추광규 기자    


 

이어 군 검찰단이 "창문 개방 폭이 바뀌었다는 것을 모를 수 도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매일 건물을 돌고 관리를 하기 때문에 창문 개방 폭이 달라져 있는 것을 모를 수 는 없다"고 반박했다.

 

영선반장 김 씨의 증언을 끝으로 이날 현장조사는 마무리 되었다.

 

박 씨 측은 군 검찰단에 대해 "다음번 현장조사 부터는 군 단독으로 이루어지는 조사가 아닌 한민구 장관의 말씀처럼 민간이 참여해 초기부터 조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와 함께 "무한정 기다리게 하지 말고 향후 조사 일정 등에 대해 사전에 알 수 있게끔 해 달라"고 요청했다.

 

군 검찰단은 "민원인 측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오늘 현장조사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겠다"면서, "다음번 현장조사 일정과 민간 참여 부분 등에 대한 답변은 다음 주 초 전화로 미리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군 복무중 의문의 사고로 두 다리 절단 한 '박준기'씨 사건은 어떤 것?

 

1994년 12월 17일 저녁시간 박 씨는 민간인 친구 A씨와 함께 춘천시내에서 술을 마셨다. 술자리를 마친 박 씨는 무면허로 차를 몰다 철책을 들이 박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친구 A씨는 전치 8주의 부상을 입은 반면 박 씨는 얼굴에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다.

 

문제는 사고 후 춘천 한림대 성심병원으로 이동한 후 군 조사결과와 박 씨 측이 주장하는 행적이 엇갈리기 시작한다는 점.

 

군은 2군단 헌병대 초동 수사에서 '박 씨는 춘천 시내에서 1994년 12월17일 밤 10시30분께 사고를 낸 후, 병원으로 친구 A씨를 데려온 뒤 미상의 시각(18일 0시께 추정)에 병원 10층 성당에서 15m 아래로 투신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어 '18일 0시30분께 3층 옥상 콘크리트 바닥에서 병원 수위장 홍 아무개 씨에 의해 발견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군의 주장을 요약한다면 헌병이 도착한 것은 병원 직원에 의해 발견된 그 이후이고 박 씨는 음주교통사고를 낸 자책감을 이기지 못한 자살시도로 인해 발생한 부상이기에 군은 이 사고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반해 박준기씨는 현장에 나온 헌병에 의한 구타 때문에 자신이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고 2년 뒤부터 조금씩 기억을 회복한 박 씨는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던 자신이 벌금형에 불과한 교통사건 때문에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의문을 품고 사건을 되짚어 보면서 기억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씨는 기자와의 취재에서 경찰조서등에 기초한다면서 "교통사고 시각은 군의 주장보다 세 시간이나 앞선 저녁 7시30분 무렵"이라면서 "병원 도착 시각은 7시50분경, 밤 9시5분께 112로 경찰에 교통사고 신고를 했고 45분쯤 후인 9시50분경 춘천경찰서 소속 최 모 경장이 병원에 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군 사고라고 판단한 경찰은 헌병 쪽에 연락을 취했고 밤 11시20분경 헌병 S씨와 K씨가 병원으로 왔다."면서, "20년 경력의 헌병 K중사는 병원 별관 쪽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다 올랐을 즈음 내가 왜 군 차량이 있는 주차장으로 안 가고 반대 방향으로 가느냐고 항의했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계속해서 "그러자 K중사는 '범죄자 주제에 수사관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왜 대드느냐'며 화를 내면서 발로 명치 부위를 찼다", "이로 인해 저는 2~3m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이어 "당시 의식은 있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면서, "수위 홍 씨가 뛰어와 무슨 일이냐고 K 중사에게 묻자 '병원 내에서 벌어진 사고이므로 당신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좋은 방법 없겠느냐'고 추궁하는 소리를 듣고 의식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박준기 씨가 뛰어 내렸다는 창문     © 추광규 기자

 

 

의식을 잃은 박 씨는 사고 11일 뒤쯤 깨어났다. 박 씨는 등골뼈·엉덩이뼈 상하지·발관절 골절 및 양쪽 혈흉(흉강 내 혈액이 괸 상태), 후복막(내장기관을 둘러싼 얇은 막의 뒷부분) 출혈, 우측두엽(기억 담당 부위) 손상 등의 진단을 받았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박 씨는 헌병이 1995년 1월20일 작성한 교통사고 등의 관한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자살을 인정한 사실이있다.

 

조사관의 '피의자가 병원 3층 옥상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병원 수위가 발견하였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요'라는 질문에 "전혀 기억나지 않으나 어머니가 병원 10층에서 뛰어내렸다고 하여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한 것으로 돼 있다. 해당 사고는 이렇게 해서 박 씨의 자살시도로 인해 발생한 부상이라고 결론지어졌다.

 

한편 이날 현장조사에서 쟁점으로 부각된 창문 개방 폭에 대해 2006년 육군 중앙수사대의 보고서에는 24cm라고 되어 있다. 2008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재조사 권고에 따른 군 보고서에는 30cm로 되어 있다. 2009년 춘천경찰서가 보내온 기록에는 21cm로 되어 있다. 현재 국방부 검찰단의 최종 판단은 '확인 불가'이다.

 

앞서 군은 박준기 씨의 요청에 따라 2002년 1군단 헌병대, 2006년 육군 수사단, 2008년 군 검찰단, 2010년 육군 법무실 등이 각 진행한 재조사에서도 '헌병 수사관의 폭행 혐의는 없다'고 결론 내리면서 당초 수사결과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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