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향신문] "여성은 열등"… 전세계 확산되는 '여성혐오'
지구촌 곳곳 ‘젠더 폭력’ 만연… 성차별 문화·종교가 부채질
기사입력: 2016/06/04 [06:15] ⓒ NGO글로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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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7일 발생한 강남역 여대생 피살 사건을 계기로 ‘여성 혐오’가 사회 문제로 부상한 가운데 지구촌 곳곳에서는 최근 들어 여성을 상대로 한 ‘젠더 폭력’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영국 여야 여성 정치인들이 ‘여성혐오’ 퇴출을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영국 노동당 이베다 쿠퍼 의원이 지난해 11월 한 기자회견장에서 여성혐오 근절을 호소하며 ‘인터넷을 되찾자’ 운동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가디언 캡처

노동당 이베다 쿠퍼·제스 필립스 의원, 보수당 마리아 밀러 의원, 자유민주당 조 스윈슨 전 의원 등 영국 여야 여성 정치인들이 온라인상 여성폭력을 막기 위해 ‘인터넷을 되찾자’(The Reclaim the Internet)는 운동을 시작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참여자들은 경찰과 검찰,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의 책임에 대해 토론하고 지역사회의 역할 등을 촉구할 계획이다. 쿠퍼 의원은 “1970년대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서 시작된 ‘밤을 되찾자’ 운동에서 영감을 얻었다”면서 “40년 전 여성들은 여성을 향한 폭력을 막고자 길거리로 나섰는데 이제는 인터넷이 우리의 길거리”라고 강조했다. 영국 싱크탱크 데모스(Demos)가 트위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3주 동안 8만여명이 ‘걸레’(slut)나 ‘창녀’(whore)라는 단어가 들어간 여성혐오 발언을 20만 차례 이상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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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10대 소녀 집단 성폭행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대가 1일(현지시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시위하던 중 몸에 ‘FEMINIST’(여성주의자)라고 적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EPA연합뉴스

◆지구촌 곳곳에 만연한 여성혐오

지난달 25일 브라질에서는 한 10대 소녀가 정신을 잃고 발가벗져진 채 누워 있는 동영상이 트위터에 올라왔다. 가해자들은 동영상 속에서 소녀가 30명이 넘는 남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야만적인 범죄 사실이 공개되면서 브라질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리우데자네이루 국회의사당 앞에는 수백명의 시위대가 연일 성폭행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부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렸다. ‘소녀가 위험한 지역에 찾아갔기 때문에 성폭행을 당할 만하다’는 등 피해여성을 겨냥한 혐오성 발언들이 2차 피해를 낳고 있다.

한 여성에게 트위터를 통해 보낸 남성의 강간·살해 협박 메시지.
가디언 캡처

영국에서는 밤 사이 600개의 강간·테러 위협 메시지를 받은 한 여성의원이 지난 1일 트위터 중단을 선언했다.

파키스탄에서는 아내에 대한 체벌을 허용하는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파키스탄 내 ‘이슬람 이념 자문위원회’는 남성이 아내를 가볍게 체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최근 제출했다. 법안에는 아내가 남편의 명령을 거부하거나 남편이 원하는 복장을 하지 않으면 남편이 아내를 때릴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특별한 종교적 사유 없이 성관계를 거부하거나, 월경 기간에 목욕을 하지 않는 아내도 체벌할 수 있다. 지나치게 큰 목소리로 말하는 부인도 남편의 체벌을 받아야 한다. 낯선 사람과 대화하거나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것도 체벌 대상이다. 무함마드 칸 시라니 의장은 “여자를 벌할 필요가 있다면 가벼운 구타는 허용돼야 한다”면서 체벌의 강도와 관련해 “두려움을 주려면 작은 막대기가 필요하다”고 표현했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정치인들의 여성비하 발언은 여성혐오 확장에 기름을 붓는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는 경쟁 여성 후보에 대해 “누가 저런 얼굴에 표를 주겠나”, “낙태시술을 한 여성은 처벌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여성비하 발언을 일삼았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여성비하로 구설에 자주 오른다. 특히 1989년 다바오 교도소 폭동사건 당시 집단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호주 여성 선교사에 대해 “시장인 내가 먼저 했어야 했는데”라는 농담을 던져 비난을 샀다.

◆여성혐오 키우는 성차별 문화

여성혐오는 남녀갈등이라기보다는 ‘여자는 이등 시민’이라는 왜곡된 사회 분위기에서 시작된다. 실제로 데모스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3주간 트위터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내뱉은 사용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다. 여성혐오가 남녀를 떠나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 내린 문화의 산물이라는 방증이다. 여성을 이등시민화하는 종교 등이 여성혐오를 증폭시킨다.

지난 2월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의 성기 일부를 절제하는 ‘할례’ 피해자가 전 세계적으로 최소 2억명에 달한다. 2014년에 발표된 유니세프의 피해자 추정치보다 7000만명이나 늘어난 숫자다. 이 중 절반이 이집트,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에서 나왔다.

페미당당 '5월 26일 강남역 행동' 준비위원회 회원과 참가자들이 26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노래방 앞에서 검은 옷과 근조 표시가 붙은 거울을 들고 침묵시위하고 있다. 회원들은 스스로와 주변 시민을 거울 앞에 둠으로써 이 사회를 사는 여성은 모두 혐오범죄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비춘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연합

여성할례는 여성이 성적 쾌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어 외도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있다.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할례를 받지 않은 여성은 정숙하지 않다고 여겨 결혼을 할 수 없다.

카메룬에서는 성범죄 피해 예방을 위해 ‘가슴 다림질’이라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가슴 다림질은 소녀들에게 2차 성징이 나타날 때 부모들이 불에 달군 돌 등으로 딸의 가슴을 눌러 발육을 방해하는 일이다. 가슴 다림질 관행은 성범죄의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는 여성혐오증과 맞닿아 있다. 유엔 발표에 따르면 가슴 다림질의 피해자는 전 세계에 380만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5일에는 파키스탄에서 ‘명예살인’이라는 명목으로 10대 소녀가 살해됐다. 파키스탄에서는 해마다 1000여명이 부모의 허락 없이 결혼하는 등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살해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희생자 대부분은 여성이다. 숨진 소녀는 친구가 애인과 마을을 떠날 수 있게 도왔다는 이유로 가족과 이웃 손에 살해당했다.

◆ “우리사회 여혐 문제 공론화… 해법 고민해야”

“지난달 17일 발생한 강남역 여대생 피살 사건은 한 명의 정신병자가 저지른 일탈이 아니라 우리의 일입니다.”

3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만난 이미경(사진)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꺼내자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을 이었다.

이 소장은 “2008년 살인마 유영철이 범행 동기를 말하면서 ‘여자들이 몸을 함부로 굴려서 죽였다. 죽어 마땅한 여자들이었다’라고 답했다”며 “강남역 살인사건 가해자 진술과 거의 똑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두순 사건도, 김길태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때 우리 사회는 한 사이코패스의 일탈로 규정짓고 그 부분만 도려내면 괜찮다는 환상을 심어줬다”며 “그 자체가 여성들에게 ‘스스로 몸조심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문제를 인정하고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인지 논의를 시작하지 않으면 같은 사건이 재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소장에 따르면 여성혐오의 원인은 뿌리깊은 가부장제 의식과 인권의식 부재에서 시작한다. 그는 “나와 다른 인간에 대한 몰지각이 혐오라는 뿌리를 만들고 여성혐오, 장애인혐오, 성소수자혐오는 그 뿌리에서 뻗어나온 줄기들”이라고 설명했다.

여성문제 선진국으로는 스웨덴과 캐나다를 꼽았다. 한국은 이들 국가에 비해 20년 정도 뒤처진 수준이다. 이 소장은 “전 세계적으로 여성 폭력 피해에 대한 문제의식이 1970년대에 퍼졌다”며 “그때 여성단체들이 생겨나고 각국별로 법과 제도 마련을 요구해 결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여성혐오 문제는 ‘의식’의 문제이기 때문에 한순간에 바꿀 수 없으며 꾸준히 토론하고 고민해야 정확한 답이 나온다”며 “강남역 10번 출구에 사람들이 모인 걸 보고 우리나라도 많이 발전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아 억울하다는 남성들에게는 “여성혐오 문제는 그런 억울함을 느끼는 남성들의 일이기도 하다”며 “자신의 발걸음 소리에 앞서 걷던 여성이 놀라 달아나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수 기자 v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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