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와 장·차관급 고위공무원, 판·검사는 물론 전직 대통령까지 수사 대상으로 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방안이 추진된다.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검찰 개혁안 가운데 핵심 방안이다. 하지만 고위공직자의 범죄 행위에 대한 인지나 고소·고발이 없어도 국회 교섭단체가 요구하면 공수처가 수사에 착수하도록 해 논란도 예상된다.
더민주 '민주주의 회복 태스크포스(TF)'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공개회의를 열고 공수처 설치 법안의 주요내용을 공개했다.
법안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원회처럼 별도의 독립기구 지위를 갖는 공수처는 공직자의 직무상 범죄행위와 횡령·배임죄, 수재·알선수재죄, 정치자금법·변호사법 위반 행위 등에 대해 수사를 할 수 있다. 전직 고위공직자의 경우 재직 중 범죄행위도 수사할 수 있다. 또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독점을 제한하기 위해 공수처가 수사 뿐만 아니라 기소권은 물론 공소유지 업무까지 맡는다. 대신 공수처 직원 비리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를 받도록 해 서로 견제하도록 했다.
공수처장 자격은 야권이 과거 추진했던 법안과 달리 법조인으로 한정 하지 않았다. 공수처장 추천위원회가 학식과 덕망이 있고 각계 전문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추천하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차장 1명과 특별수사관은 별도 인사위를 구성해 처장이 임명한다. 정무직인 처장과 특정직인 차장의 임기는 3년으로 중임하지 못하게 했다. 차장은 법조경력 10년 이상으로, 특별수사관은 법조경력 5년 이상의 법조인으로 제한을 뒀다. 특히 검찰에 대한 견제를 위해 특별수사관 중 현직 검사의 비중이 절반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수사 대상에는 △법관과 검사를 비롯해 △국무총리와 행정각부의 장·차관급 이상 공무원 △대통령실 소속 대통령실장, 정책실장, 수석비서관, 기획관, 보좌관, 비서관, 선임행정관, 경호처장과 차장 △국회의원과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군 장성 △감사원·국가정보원·공정거래위·금융위·국세청의 국장급 이상 공무원 △치안감급 이상 경찰공무원 △국장급 이상 법원·검찰 공무원 △금융감독원 원장·부원장·부원장보 및 감사 등이 포함됐다. 특히 전직 대통령도 수사 대상에 포함됐다. 공직자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형제·자매 등 친족도 공직자 본인의 직무와 관련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공수처의 수사를 받게 된다.
TF 팀장인 박범계(53·사법연수원 23기) 의원은 "지금까지 제안된 법안 가운데 가장 광범위한 수사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나 그 친족의 범죄행위를 인지하거나 고소·고발이 있는 경우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검찰이나 감사원, 국민권익위, 국가인권위, 금융정보분석원(FIU)로부터 수사의뢰가 있는 때에도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 특히 국회 원내교섭단체로부터 수사의뢰가 있는 경우에도 수사에 착수하도록 한 부분은 정치적 논란이 예상된다.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민주는 공수처 신설 추진에 협력하기로 합의한 국민의당과 논의를 거쳐 다음주쯤 구체적인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정의당과는 법안 발의는 따로하되 추후 공조할 계획이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8월 임시국회에서 공수처 신설 법안을 최우선으로 협상에 나설 것"이라며 "여소야대 국회인데다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 중에서도 찬성하는 분들이 적지 않아 어느 때보다 통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TF는 검찰 개혁 방안으로 검찰 인사 공정성 확보를 위해 검찰 인사위원회의 실질적인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 대검찰청과 법무부의 감찰기능을 개선하기 위해 현행법상 훈령으로 돼 있는 대검 감찰위원회 운영 규정 등을 검찰청법에 직접 명시하는 동시에 감찰규정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대검 감찰 이후 보충적으로 수행되던 법무부 감찰을 대검 감찰과 동시에 수행하도록 훈령인 법무부 감찰규정도 개정을 요구할 계획이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제한하기 위해 재정신청 범위와 기간도 확대할 방침이다.
한편 정의당도 이날 공수처 신설 법안을 발표했다. 노회찬 원내대표가 대표발의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에 관한 법률안'은 15년 이상 경력을 가진 법조인 중 대법원장이 공수처장 후보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한 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차장은 공수처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수사대상에는 오는 9월 28일부터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행위도 포함됐다. 또 더민주 법안과 달리 전직 대통령은 수사대상에서 빠진 대신, 국회의원 4분의 1 이상의 연서가 있거나 국회 국정조사 중 조사위 요구가 있을 때에는 공수처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했다.
노 원대대표는 "검찰 수사권 약화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지금은 고위공직자들의 비리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가 필요하다"며 "지금이야말로 검찰 개혁의 최적기"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