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절차 개입' 고법부장판사 징계… 정당성 놓고 논란대법원 "사법행정 담당 법관으로 직무상 의무 위반"... 담당 법관은 아냐!!
<야구선수 도박사건 정식재판 회부 결정 막은 혐의>
사법행정권의 범위를 둘러싸고 대법원장과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정면 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대법원장이 재판 개입 혐의로 '견책' 처분을 하자 징계를 받은 고법부장판사가 '정당한 사법행정권 행사'라고 반발하며 불복소송을 내겠다고 나선 것이다.
법관징계에 대한 불복소송은 대법원 단심(單審)으로 진행된다. 법조계에서는 징계의 적정성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오승환 선수 재판 개입"… 대법원장, '견책' 처분= 문제가 된 사건은 원정도박 혐의로 2016년 1월 약식재판에 넘겨진 프로야구 오승환·임창용 선수 사건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하던 임성근(54·사법연수원 17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약식명령이 청구된 두 프로야구 선수의 도박사건과 관련해 법원 직원과 담당 판사를 통해 재판절차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견책' 처분했다. 당시 김모 판사가 약식명령 청구된 이 사건을 정식재판에 회부했다는 보고를 받은 임 부장판사가 공판절차 회부 결정문 송달을 보류하고, "다른 판사들의 의견을 더 들어보고 처리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해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관으로서의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12일 "김 대법원장은 법관징계위원회 결정에 따라 4일 임 부장판사에 대해 견책 처분을 하고 징계대상자에게 이를 통지했다"고 밝혔다.
법관징계법은 법관에 대한 징계의 종류를 △정직(1개월 이상 1년 이하) △감봉(1개월 이상 1년 이하) △견책 등 3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별도의 징계 사건이다.
◇"법원 비난 우려해 조언한 것일뿐… 불복소송 낼 것"= 임 부장판사는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던 오승환 선수에게 악영향을 줄 경우 사법부가 비난받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다른 판사들의 의견을 들어보라'고 조언한 것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는 징계에 불복해 소송을 내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임 부장판사는 12일 입장문을 통해 "형사수석부장으로서 재판부가 국민이나 여론으로부터 어차피 벌금형밖에 선고할 수 없는 사건인데 적어도 4∼6개월 소요되는 공판절차를 진행해 결과적으로 유명 야구선수의 미국 진출을 막았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 우려돼 조언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승환 선수 등에게 적용된 형법 제246조 1항 '단순도박죄'는 최고 법정형이 벌금 1000만원이라, 정식재판에 회부하더라도 약식재판과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뿐만 아니라 재판에 소요되는 시간만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결코 약식절차에서 처리하라든가, 또는 벌금형을 올리든지 내리라든가 하는 등 사건의 결론에 대해 어떠한 언급이나 지시를 하지 않았다"며 "김 판사도 (이 일과 관련해)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에 '재판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나 압력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언을 듣고서 다른 판사들의 의견을 들은 결과 이 사건을 적정하게 처리한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강조했다.
또 "담당 판사가 조언이 재판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나 압력이라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사건의 적정한 처리에 도움을 받았다 진술하고 있는데도 이를 사법행정권의 정당한 범위를 벗어났다는 징계사유로 삼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사법행정권의 정당한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법원에 불복의 소를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관 징계에 대한 불복소송은 법관징계법 제27조에 따라 징계 등 처분이 있음을 안 날부터 14일 이내에 전심(前審)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대법원에 징계 등 처분의 취소를 청구하여야 하며, 대법원에서 단심으로 진행된다.
◇징계 적정성 싸고 법조계 의견 엇갈려= 이 같은 초유의 사태에 법조계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단순도박죄는 어차피 상한이 벌금 1000만원이라 정식재판에 회부되도 벌금형 이상이 나올 수 없는 사건"이라며 "무죄를 다투는 사건이거나 형의 종류를 다투는 사건이 아니었고, 피고인이 혐의를 인정하는 사건을 정식재판에 회부해 법정에 불러 같은 벌금형을 선고하는 것은 오히려 판사의 갑질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론을 어떻게 내라고 지시한 것도 아니고 '다른 판사들 의견도 들어보고 판단해 보시라'고 한 것 뿐인데 형사수석부장판사가 그 정도 이야기도 못한다고 한다면 그 자리를 뭐하러 두는지 모르겠다"면서 "재판의 독립이라는 것이 완전히 밀폐된 사무실에서 판사가 법원 내외부의 다른 어떤 의견도 듣지 않고 판결을 하라는 말이냐. 동료 판사들과 점심 식사를 하면서도 사건과 관련한 이런 저런 의견을 나누고, 사건 관계자 등의 목소리도 적절히 들어야 올바른 판단이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고법 판사는 "임 부장판사는 사건 실체내용이 아닌 절차 부분에 대해 수석부장으로서 통상의 경우와 다르다고 조언을 한 것이고 이는 정당한 사법행정권을 행사한 것"이라며 "특정 결론을 지시하는 등의 얘기를 했으면 모르겠지만 대법원이 밝힌 징계사유만으로는 위법적인 재판개입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임 부장판사가 조언한 것이 징계사유라면 앞으로 후배 판사들이 잘못 판단해도 사법행정권자인 수석부장이나 법원장은 아무 말도 못하게 된다"고 했다.
반면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약식에서 정식재판으로 넘어가는 것을 결정하고 이후 그 결정을 취소했다고 하면 문제가 있다"며 "결정이 나기 전이라면 주변 판사들과 이야기를 해보라는 정도의 조언은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결정 이후라면 그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판사가 이미 내린 결정을 번복하도록 했다면 아무리 작고 미미한 사건이라고해도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고법 판사는 "같은 재판부 내에서는 서로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지만, 수석부장판사인 선배 판사가 후배 판사에게 의견을 말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며 "선배는 조언으로 얘기했을 수 있지만 받아들이는 후배로서는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한편 지방의 한 부장판사는 "젊은 판사들 입장에서는 사법행정권자인 수석부장판사가 결론이 마음에 안 드니 상의해보라고 한 것 아니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며 "반면 임 부장판사 입장에서는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개인적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법원이 국민에게 좀 더 나은 사법서비스를 제공하고 신뢰받기 위해 논의를 해보라고 이야기를 한 것 일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식재판으로 가도 벌금형인데 이걸 공판절차에 회부하는 것이 너무 법원 편의적인 관점이 아니냐는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인 듯 보인다"며 "임 부장판사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보기에는 애매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관설당박제상선생기념사업회 박흥식 수석 부회장 <저작권자 ⓒ NGO글로벌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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