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과화재
‘서울의 소리’ 적색테러에 침묵하는 언론
유튜브 ‘서울의 소리’의 응징취재. 경찰도 법도 꺼릴 것 없이 우파인사들 모욕하고 행패부려
기사입력: 2020/03/27 [11:50] ⓒ NGO글로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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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서울의 소리’의 응징취재. 경찰도 법도 꺼릴 것 없이 우파인사들 모욕하고 행패부려  

▲ 70년 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이 야만인이라 끔찍한 살인들이 벌어진 게 아니다. 법의 지배가 무너지면 사람은 약간의 정당성만으로도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다.  © NGO글로벌뉴스

-유튜브 ‘서울의 소리’의 응징취재. 경찰도 법도 꺼릴 것 없이 우파인사들 모욕하고 행패부려 

-MBC와 경향은 공공연한 폭력엔 침묵. 오히려 정치적 ‘응징’을 정당화하는 인터뷰까지 실어

-해방 후 법이 무너지면서 약간의 정당성만으로도 서로 한없이 잔인해지던 참혹함을 잊었는가

 

1. 우파 시위대를 향한 공공연한 폭력

 

우파 유튜버 안정권 씨가 작년 11월 24일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했다. 황교안 당시 한국당 대표가 단식 농성하는 옆에서 좌파단체 회원들이 조롱 단식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안정권 씨와 말다툼을 하던 좌파단체 회원 한 명이 경찰 바리케이드를 치우더니 구둣발로 앉아있던 안정권 씨 얼굴을 걷어찼다.

 

주변에 수많은 경찰들이 있는 것도, 여러 명이 동영상을 찍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동영상에 ‘퍽’하는 구타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안정권 씨 얼굴 뼈에 금이 갔고 하마터면 목숨까지 위험할 뻔한 폭행이었다. 현장에 있던 경찰들이 즉시 가해자를 에워쌌고, 경찰관 한 명이 안정권 씨에게 “저 분도 맞았다고 주장하는데 쌍방폭행이냐”고 물었다.

 

파출소에서는 다른 경찰관이 “본인끼리 알아서 하라. 우리가 개입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폭행죄로 처벌 받을 줄 알았던 가해자는 어찌된 일인지 그 뒤에도 시위 현장을 돌아다녔다. 2020년 1월 18일 위안부상 반대 집회장에 나타난 가해자는 주최 측인 이우연 박사의 얼굴을 때렸다.

2. ‘응징취재’라는 이름의 폭력과 공포

 

공개 장소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다니는 가해자는 유튜브 채널 ‘서울의 소리’에 소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는 우파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망신을 주고 이 장면을 유튜브에 올리는 이른바 ‘응징취재’를 하고 있다.

 

류석춘 연세대 교수 연구실에 쳐들어가 “아이고 매국노 류석춘이 여기 있네. 매국노 이 놈아”라고 온갖 모욕을 주며 팔을 끌고 나가려고 했다. 최대집 의사협회 회장 사무실에 몰려 들어가 “일베, 의사협회 회장. 정치해? 지금 당신이?”라고 고함을 치고 “일베 새X야”라고 욕을 했다. 가로세로연구소 사무실 문을 열고 강용석 김세의 대표 나오라고 소리를 지르며 촬영하지 말라는 여직원들 얼굴을 다 알아볼 수 있게 모자이크해 유튜브에 띄웠다.

 

남의 거주지에 무단 침입해 창피를 주고 취재를 거부하는 모습을 촬영해 방영하는 것을 ‘취재’라고 할 수는 없다. 당하는 피해자들은 심한 모욕감과 함께 경찰도 법도 꺼릴 것 없다는 듯 몰려다니며 행패를 부리는 좌파단체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것이 테러이다.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이를 비판하고 법치의 복원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문 방송들이 침묵하고 있다. MBC의 경우는 그나마 더했다.

 

2019년 2월 25일 MBC 뉴스데스크 이재은 앵커는 ‘서울의 소리’ 백은종이 류석춘 연세대 교수 연구실에 쳐들어간 사건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소개했다. 공포에 질린 류 교수가 백은종에게 “나가주세요 좀”이라고 애원하는 게 이재은 앵커에게는 재미있었나 보다.

 

심지어 경향신문은 ‘응징 언론인’이라는 제목으로 백은종의 인터뷰 기사까지 실었다. 그리고 “그는 기성 언론의 무책임한 기계적 중립을 비판했고, 기자는 그의 지적에 공감했다”고 기사를 썼다.

 

그러나 지금 고개를 들고 있는 정치적 ‘응징’이 정당화되고 세력을 키우고 그래서 횡행하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이미 해방 직후에 이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3. 해방직후 경험한 참혹한 ‘응징’들

 

1948년 4월 3일 새벽 한라산 정상에 봉화가 오르며 남로당원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남로당원들은 경찰 파출소를 집중 공격해 신업 지서장 문익도의 목을 톱으로 자르고, 함덕 지서장 강봉현을 죽창으로 난도질해 죽였다. 남원 지서에서는 고일수 순경의 목을 칼로 쳤고, 김장하 순경 부부를 죽창으로 찔러 죽였다. 경찰관의 부모를 총살한 뒤 팔 다리를 자르고, 임신 7개월인 경찰관 누이를 산 채로 매장했다.

 

그날 밤 애월면 구엄마을 대동청년단장 문기찬이 집에서 자다가 끌려 나가 항문에서 머리까지 쇠꼬챙이에 찔려 죽었으며, 전 하귀 지서장 문영백이 달아나자 10대 초반인 그의 딸을 죽창으로 항문을 찔러 죽이고, 제주읍 도두리에서는 대동청년단 간부의 부인 등 여성 11명을 끌고 가 윤간한 뒤 칼과 죽창으로 온몸을 난자해 죽였다. 봉기 첫날 경찰과 민간인 55명이 피살됐다.

 

제주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 대기 중이던 육군 제14연대가 여수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여수 경찰서장  고인수를 총살하고, 여순경 정현자를 벌거벗겨 끌고 다니다 때려 죽이는 등 반란 첫날 경찰관만 74명을 살해했다.

 

다음날 반란군은 열차를 타고 이동해 순천을 점령했다. 반란군은 순천 경찰서장 양계원을 청년단장 이정렬과 함께 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다 때려 죽이고 눈알을 뽑은 뒤 돌로 머리와 다리를 내려치고 휘발유를 뿌려 불에 태웠다. 순천  감찰서장 한운경 감찰관도 총살 후 콜타르를 바르고 불태웠다.

 

이제는 대한민국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참혹한 역사이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제주와 여수 순천에서 경찰과 군인  서북청년단에 의한 참혹한 학살이 벌어졌다. 어떤 학자들은 좌익에 의한 살인은 ‘처형’으로 우익에 의한 살인은 ‘학살’로 명명하기도 하지만, 죽은 사람들에게 무슨 이름으로 죽었는지 또는 어느 쪽 학살이 먼저였는지는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70년 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이 야만인이라 끔찍한 살인들이 벌어진 게 아니다. 법의 지배가 무너지면 사람은 약간의 정당성만으로도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다. 지금 그 시초가 보이는 것 같아 두렵다. MBC나 경향신문 기자들 중에는 적색테러에 피해 입을 일이 없고 오히려 통쾌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들의 자녀가 살 세상은 어떻게 할 것인가.

 

친북 인사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자기 자식은 미국으로 유학 보내 미국 회사에 다니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사회주의로 돈을 벌어 자식은 미국 가서 살게 하는 게 국민 모두에게 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지옥이 오기 전에 막아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민족정기 수호 대책협의회 의장

관설당박제상선생기념사업회 회장

한국 NGO지도자협의회 상임공동대표

행정자치부 제46호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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