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열린문, 여성 자영업자 폭력 보고서] 이중 약자, 여성 사장님
목 조르는 손님, 칼 꺼내는 손님, 주변 맴도는 손님
기사입력: 2021/12/03 [09:39] ⓒ NGO글로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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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맛 좀 봐야겠어"...
그 손님은 여자 사장님 목을 졸랐다

 

단순 업무방해, 주취폭력이 아니다. 이것은 젠더폭력이다. 여성 자영업자 102명을 만났다. 여성 자영업자 대상 범죄 판결문 287건을 집중 분석했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열린 문'의 공포였다. 가게의 문은 가해자에게도 열려 있어야 한다. 가해자가 마음먹으면 언제고 그 문을 열고 침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찰도 법도, 열린 문을 막아설 안전장치가 되지 못했다. <오마이뉴스>는 여성 자영업자를 상대로 한 젠더폭력 실태를 최초로 분석·보도한다. < 편집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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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부동산, 술에 불콰하게 취한 남자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그는 출입문과 3m 가량 떨어진 책상에 앉아있던 최미혜(61, 공인중개사, 가명)씨 앞으로 한달음에 걸어왔다. 어제 일처럼 그 날의 일을 그려낸 최씨는 그 남자의 첫 마디도 기억하고 있었다.

 

 

"당신이 우리 집 계약했지?" 최씨는 '우리 집'이 어딘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남자는 부동산 바로 건너편 아파트의 세입자였다. 남자는 술에 취해 가정폭력을 일삼았다고 한다. 칼을 들고 아내를 쫓아다녔다고 한다. 전세계약이 만료될 즈음 관리사무소는 집주인에게 세입자의 상황을 전했다. 집주인은 원래부터 계약을 맡겨왔던 최씨에게 새로운 세입자를 알아봐달라고 했다. 새로운 전세계약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그 남자는 살던 집에서 나와야 되는 상황이었다. 당시를 떠올리며 최미혜씨가 했던 후회는 하나였다.
 

 

"'저 아닌데요' 그 거짓말 한 번이면 됐을텐데 말이에요. 제가 고지식해서 거짓말을 못해요."

 

최씨는 곧이곧대로 "네, 제가 계약했는데요"라고 답했고, 날아든 건 두 손이었다. 그 남자가 목을 졸랐다.  "너 때문에 이사가게 됐잖아. 너 맛 좀 봐야겠어."
 

 

목이 졸린 채로 앉아있는 촤씨를 그 남자는 있는 힘껏 벽 쪽으로 밀었다고 했다. 빠져나갈 문은 그 남자가 들어온 그 곳 뿐이었고, 문으로 향하는 통로는 남자가 막고 있었다.
 

 

"저는 '찰나'라는 게 이거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벗어나지 온갖 방법이 머리를 스치더라고요."
 

 

목이 졸린 채 빠져나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던 찰나, 그녀를 구한 건 전화 한 통이었다. 남자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남자는 목을 조르던 손 하나를 풀어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려했다. 최씨는 남자를 와락 밀치고 뛰쳐나갔다. 그 남자가 다시 오진 않았다. 그래도 무서웠다. 오후 7시면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최씨는 혼자 손님이 올 때면 '업무 끝났어요, 내일 오세요'라고 안내한다고 했다. "손님을 경계하게 된 것", 사건 이후 바뀐 변화다.
 

 

"물론 자주 있을 일은 아니죠. 보통 부동산을 부부가 운영하시는 경우도 많고 두 분이서 하시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혼자 있고, 여자고, 드세게 생기지 않아 약해 보였을 거 같아요.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했겠죠. 제가 키도 크고 남자였다면, 자기가 살던 집 계약을 중개했다는 이유로... 이렇게는 못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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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조른 남자도 한 때는 손님이었다.

이처럼 단순 업무방해 수준이 아닌 목숨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놓였던 여성 자영업자들에게 '그 날'은 트라우마다. 망원동에서 10년 째 네일숍을 하고 있는 이은미(35, 가명)씨의 증언이다.
 
"어떤 남자가 밤에 찾아와 돈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네일숍 차리고) 초반에 이런 일을 많이 당해서 '사장님 없어서 못 드려요'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어요. 그랬더니 '말을 그딴 식으로 해?'라면서 가방에서 신문지에 두른 칼을 꺼내는 거예요. 칼을 보자마자 '죄송해요, 사장님 안 계셔서요, 제가 혼나요'라고 착하게 말했더니 수그리고 나가더라고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잊히지 않았다. 내내 두려웠다. 그 사건 이후, 그는 가스총 구매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그런데 가스총을 쏘고 난 후가 더 걱정이었다.
"경찰이 체포해가면 뭐해요, 그 다음 날부터는 어떡하겠어요. 또 오면 어쩌지, 얼마나 걱정되겠어요. 가스총 알아보려고 용산까지 갔는데 결국 못 샀어요."
 
이씨는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지나다니는 행인만 봐도 깜짝 놀라고 가게에 있는 거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당시에는 (가해자와 연령대가 비슷한) 아빠도 싫었어요. 그 때는 '이러다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거든요. 오후 6시만 지나도 깜깜해지니까 더 무섭고, 정신과에 가봐야 하나 생각도 했어요. 부모님께 말해볼까 싶기도 했는데, 가게에 10시간을 나와 있는데 그 시간 내내 부모님이 계실 수도 없잖아요. 그냥 버텼어요. 많이 힘들었죠."
 
목을 조른 그 남자, 칼을 든 그 남자. 모두 한 번의 방문이었지만 일상이 흔들렸다. 손님을 상대해야 소득을 올릴 수 있음에도 최씨는 "손님을 경계하게 됐다"고 했다. 이씨는 "한동안 손님이 오는 거 자체가 싫었다"고 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굳은살이 박혔지만, 이씨는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원치 않게 드세졌고, 그게 슬프다"고 말했다. 자칫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었던 상황이지만 공권력의 도움을 받지도 못했다. 최씨는 남자가 목을 조른 그 날, 경찰서에 신고했지만 그 남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따로 수사는 안 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죠, 제가 말로만 얘기한 거라 증거가 없어 그런 건지, 어딜 맞질 않아서 그런지... 경찰이 사무실 안에 CCTV를 다는 게 좋을 거 같다는 말은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배 한 박스를 사 들고 가서 순찰 좀 자주 와달라고 했어요. 한동안 하루에 두 번 정도 순찰 돌고 가시더라고요."
 
또 다른 네일숍 사장님 이현정(가명)씨는 성범죄자가 가게를 방문한 적도 있다고 했다. 역시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조처를 취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가게 밖에서 고양이 밥을 주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괜히 말을 걸더라고요. 5번이나 왔고 한 번은 가게 안까지 들어왔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치않게 성범죄자 알림e 앱을 확인했는데, 그 남자가 등록돼있더라고요. 너무 무서워서 경찰에 전화를 걸어 '성범죄자가 계속 오면 어떻게 하냐'고 문의했더니 상해를 입은 것도 아니라서 따로 처리할 수는 없다고 답하더라고요. 내가 뭔 일을 겪어야 대처해주는 건가... 싶어서 좀 그랬어요."
 
가해자들은 '열린 문'으로 들어와 목을 조르고 칼을 꺼내들었다. 어떤 이는 염탐하듯 주변을 기웃거렸다. 그럼에도 이는 사건화조차 되지 못했다. 암수(暗數, 인지되지 못한 것)폭력이다.

왜, 유독, 여성 자영업자들에게

왜 유독 여성 자영업자들이 피해 대상자가 될까. '손님은 왕'이라는 명제가 통하는 우리나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은 '을'이 된다. '갑'들은 리뷰 하나로 협박하고, 동네 장사를 이렇게 해서 되겠냐며 타박한다. 여기에 여성이라는 성별이 더해지면 이들은 '병' 더 나아가 '정'까지 몰린다.
 
장사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중 약자'가 돼버린 여성 자영업자들은 너무나 손쉽게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흉악 범죄도 예외는 아니다. 자영업자 대상 범죄를 분석한 '상업범죄 피해조사'(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6) 보고서는 "폭력 범죄에서 사업주의 성별(여성을 뜻함)은 (가해자로부터) 범죄 발생을 저지할 수 있는 유능한 감시인의 부재 상황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짚고 있다.
 
가해자에게 '여성 사장님 = 감시인의 부재'로 인식된다는 뜻이다. 여성 1인 자영업자의 범죄 노출에 대한 보고서 '여자 혼자 장사하기'(한국여성학, 2018)를 발표한 추지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둘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사업주와 손님의 관계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사회적 관계로 전환된다"며 "여성이 홀로 장사를 한다는 것은 범행에 유리한 기회의 하나로 이해되곤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여성 자영업자들은 더 많은 범죄 피해를 입고 있다. 위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여성 1인 자영업자 가운데 '폭력성 업무방해'를 경험한 사람은 7.8%(908명 중 71명)로 조사됐다. 반면 남성 1인 자영업자의 경우 3.8%(496명 중 19명)만이 폭력성 업무방해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성희롱·성추행 등 성폭력 피해 역시 1인 여성 자영업자의 3.6%(908명 중 33명)가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남성 1인 자영업자 중 피해를 입었다고 답한 사람은 없었다. 추 교수는 자영업자를 상대로 한 범죄가 비단 '생물학적 여성'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라고 짚는다. 추 교수는 "여성화된 존재 즉, 약자로 보이는 이들이 목표물이 된다. 이를 여성들이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해자들은 여리여리하고 유연한 사람을 '약자'로 만들어버린 후 이 여성화된 존재에게 음식 등을 제공받을 뿐 아니라 감정 노동까지 제공받아야 한다고 여긴다"며 "해당 노동에 하필 돌봄(음식을 주는 등의)의 개념 즉, 젠더화된 관념이 추가돼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추 교수는 "일명 핑크 칼라 노동인데, 이 노동은 가치 저하될 뿐 아니라 폭력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형적인 젠더폭력의 범주에 성매매·성폭력만 포함시키는데 여성 자영업자에 대한 폭력 역시 젠더폭력"이라며 "주취폭력 및 업무방해 안에 젠더화 된 사회적 관계의 맥락이 숨겨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 : 이주연·이정환·홍하늘
사진 : 권우성 | 제작 : 이종호 | 개발 : 황장연 독립편집부 facebook.com/ohmy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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