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대통령의 국민간담회 지록위마(指鹿爲馬)에 다름 아니다!진영간의 공동이익 강조는 협잡정치의 또 다른 이름윤석열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공동의 이익추구를 언급했다. 이 부분에서 사회학적 의미로서의 이익사회의 개념이란 서로 결합되어 있는 개인들이 단지 일정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파악하는 사회적 실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목적 자체가 없어진다든지 변질할 때는 이러한 사회적 실체도 따라서 없어지든지 변질하든지 한다. 이러한 사회적 실체의 원형을 말한다면, 사회생활에서 거의 대부분의 결합이 그것이며, 정치생활에 있어서의 결합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날 윤석열대통령이 피력한 공동의 이익은 사실상 대통령실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한 대표를 겨냥해 ‘공동의 이익’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이 말이 어떤 질문에 의해서 제기된 것인가를 살펴 보면 이렇다.
이른바 최근에 껄끄럽다고 알려진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와의 관계에 대해 물어본 데 대한 답변에서 였는데, 이 당시 윤석열대통령은, “정치를 오래하다 보면 다 앙금이 있더라. 국회의원 여러 번 하신 분들끼리 정말 저 사람 없으면 정말 죽고 산다는 것 없다. A라는 국회의원과 B라는 국회의원이 친한 것 같았는데 자세히 얘기 들어보면 상당히 옛날에 섭섭한 게 서로 있었다. 그렇지만 또 같은 당 의원으로 같이 일을 해 나가면서 또 그런 것이 풀리고 이렇게 가는 거다. 그래서 개인적인 감정 가지고 무슨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같이 하면서 우리가 공통의, 공동의 과업을 찾아나가고 공동의 정치적 이익이라고 하면 그런 것을 추구해나갈 때 강력한 접착제가 되는 거다.” 라고 토로하고 있지만,
논어 자로(子路)편에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화(和)하되 동(同)하지 않지만, 소인은 동(同)하되 화(和)하지 않다…. 무슨 말일까? 화(和)라는 것은 조화, 화합, 화목, 어울림 등을 말하는 것이고, 동(同)은 같음, 획일성 등을 말한다. 그렇기에 이 말은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화합, 어울림을 추구하되 획일적인 같음을 요구하지 않지만, 소인은 획일적으로 자기와 같을 것만을 요구하지, 서로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이와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윤석열대통령이 말한 자신과 당과의 공동 이익 추구는 협잡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윤석열대통령과 한동훈대표 중, 누가 군자이고, 누가 소인배일까 하는 문제에 접근할 필요도 없다. 그 공동의 이익이라는 어의가 대통령 개인의 생각인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실 브레인들이 스크랲 해준 것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우리 헌법에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제7조 제1항). 헌법은 대통령, 국회의원 등에 대해서도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때문에 국정의 촤고지도자는 대통령 개인이나 정부여당의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고 사회 국민 전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 주시기 바란다.
윤석열대통령은 그 부분에서 협잡의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공동의 이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대립구도 완화’ 방안을 말했어야 했다.
대통령 자신과 한동훈 대표, 대통령실과 김건희, 그리고 민주당의 대립구도’를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라는 본질에 초점을 맞추어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이 진행되어야 했고, 그 핵심언어가 피력됐어야 하는 것이지만, 일종의 자기 변명과 푸념만 늘어 놓고 만 형국이 되어 버렸다.
특히 여기에 더하여 정치과정에서 나타난 윤석열정부와 이재명 입법독재의 대립, 여당과 야당의 대립,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립 등의 문제는 하나도 해소되지 않은 채 국민의 정치적 불신과 무관심을 야기하였다. 윤석열대통령의 어제 기자회견은 또 다른 형태의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등 악순환을 계속되게 했다.
윤석열대통령 자신이나 그 브레인들이 협치(協治) 개념의 대두와 함께 한국정치과정에서도 대립구도 완화를 위한 특단의 혁신적 조치를 이번 기회에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국회를 비롯한 정치주체들로 하여금 대립구도를 완화하고, 사회적 갈등을 원만하게 해소하며, 숙의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그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다시금
구동존이(求同存異), 구동화이(求同化異)의 정치가 요구된다.
구동존이는 윤석열대통령이 민주당에 갖고 있는 견고한 대 야당을 대하는 기본 방향이었고, 이를 최근엔 한동훈대표에게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사실 대통령은 민주당이나 한동훈에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통점을 찾아가야 했고, 정치,정무적으로 현안에 대한 입장 차를 완화해 가면서 정부와 여당과 야당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것이 올바로 된 공동의 이익이라는 것이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끝나가는 기미가 보일 때 구동화이, 이른바 이견이 있는 부분에까지 공감대를 확대하는 전략을 갖고 있지도 않은 용산의 대통령실 브레인들이 바보들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정치 패권주의로 만 갈리 만무하다. . 자신들의 생각과 같지 않다고 해서 즉시 배척해서 상대를 하지 않는다면, 상생, 공존하는 인류사회는 있을 수 없다.
과거, 외세가 침입할 때, 국력을 하나로 모아 안보를 지켰고, 가난의 보릿고개를 온 국민이 힘겹게 넘어야 할 때, ‘잘 살아 보세’ 라는 구호 아래 온 백성이 희망과 보람으로 힘 모아 극복할 수 있도록 한, 박정희대통령의 역할도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가 작금의 정치는 이와 반대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이간질을 통해서 진영 결속을 도모하며 그들 만의 특권을 유지하려 한다. 이 모든 게 정치인들의 이기적인 술수였음을 부인 할 수 없다. 익명성을 수용할 수 있는 고등동물 인간을, 색깔 프레임을 씌워, 나와 다른 색이면 무조건 배척하고 응징하는 하등동물 개미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모함과 비난을 통한 진영의 결속이 아니라, 서로 다를 지라도 같이 갈 수 있는 통 큰 리더십을 발휘할 때가 되었다. 물론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악행이 반복될 수 있는 암 같은 적폐라면 진통이 따르더라도 그에 맞는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할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어서, 어제 기자간담회를 통해 그러한 방안도 제기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으나 그러하지 못했다.
2200여 년 전 진시황 사후에 권력을 잡은 승상 조고가 벌인 정치적 술수로서의 지록위마가 생각나는 이유는 왜 일까? 조고 그는 조정의 신하들이 자기를 얼마나 추종하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황제 앞에 사슴을 끌어다 놓고는 말이라고 했다. 황제는 승상께서는 왜 생뚱맞게 사슴을 말이라 하느냐고 했다. 그러나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하들은 승상의 말이 맞는다면서 맞장구를 쳤다. 이런 일을 벌인 다음 조고는 사슴이라고 답했던 자들에게 이러저러한 죄목을 뒤집어 씌워 모두 죽였지만, 사실은 지록위마의 속셈이 색출과 제거였기 때문에 자신의 뜻에 맹목적으로 충성하지 않는 이들을 찾아내어 없애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얘기다. 일종의 편 가르기다. 내 편과 내 편 아닌 자들을 구분한 후 내 편에게는 무한의 자유를, 반대편에게는 파멸을 안기고자 한 것이 지록위마의 실체였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보여 준 일련의 보여 준 것을 반복하여 지금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정치를 하려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추정자들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거나........ 모든 게 잘못 비틀어져 가고 있는데, 이를 감싸고 도는게 대통령을 위한 것도,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것도, 다만 국가와 국민들에게 불익을 제공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조대형대기자 yns-cth@naver.com <저작권자 ⓒ NGO글로벌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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